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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린당(講麟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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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린당(講麟堂)
서사자
서체 해서
기탁처 안동김씨 소산문중
크기 65.5×148.5cm(세로×가로)
기능별 서당/서원
내용별 교육
게시공간 강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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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인조(仁祖) 때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청나라로 끌려가 6년간이나 고생하다가 귀국 후 낙향(현 안동시 풍산읍 서미동)하여 제자들을 모아 강론하던 강당에 게시된 편액이다. ‘인(麟)’은 ‘인경(麟經)’, ‘인서(麟書)’, ‘인사(麟史)’로『춘추(春秋)』를 지칭한다. 공자가 춘추를 편찬하다가 노(魯) 나라 애공(哀公) 14년에 “서쪽 들판으로 사냥을 나가서 기린을 붙잡았다[西狩獲麟]”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린 다음 절필(絶筆)한 데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강린당(講麟堂)’은 ‘춘추(春秋) 대의(大義)를 강론하는 집’이란 뜻으로, 공자(孔子)의 춘추 필법(春秋筆法) 정신, 존주 대의(尊周大義)를 염두에 두고 명명한 것이다.또한 당시 오랑캐인 청(淸) 나라를 배척하고 명(明) 나라를 계속 섬기는 것이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춘추』의 필법(筆法)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청음(淸陰)이 형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1561~1637)과 더불어 백세청풍의 충절을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가능하다. 예서체로 쓴 편액이 하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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