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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인쇄방법
인간은 기록을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후대에 전한다. 이것이 쌓이면 문화가 되고, 해당 지역의 역사가 되며, 나아가 민족의 역사성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인류는 다양한 형태의 문자, 도구를 이용하여 축적한 정보를 기억하고, 보급ㆍ전파하게 되었다. 문자의 기록은 처음에는 동물의 뼈나 상아(象牙), 나무, 돌 등의 도구를 이용하다가 서사재료와 도구가 발달하면서 붓을 이용하여 종이에 쓰는 필사를 통하여 책의 형태를 처음으로 갖추게 되었다.
필사는 하나하나 직접 쓰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내용이 담긴 여러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쓰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글자의 모양도 일정하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필사는 단일 정보를 기록하는 수단만 되었을 뿐 정보를 보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보를 오래도록 보존하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인쇄 수단이 필요하였다. 인쇄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목판과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이다. 목판은 문자를 나무에 새겨 종이에 찍는 기술로 인쇄방법 중 가장 먼저 고안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금속활자와 목활자로 대표되는 활자는 고려시대 이후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계속해서 사용되어 왔다. 특히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은 우리 선조들이 세계 최초로 고안해낸 것이다. 활자를 이용한 인쇄 방법은 조선시대 말까지 성행하였고, 이후 석판과 신식활자를 통한 인쇄가 보급화되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은 음각(陰刻) 내지는 양각(陽刻)으로 문자를 판각하여 책판(冊板)을 만들고, 종이로 찍어 책을 만든 인쇄방법이다. 서기 636년경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전파되었으며, 인쇄방법 중 최초로 고안해낸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목판인쇄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으로 알려진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고려의 『보협인다라니경(寶?印陀羅尼經, 1007)』,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및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 대표적이며, 조선 초기에는 간경도감(刊經都監), 왕실발원(王室發願)의 중앙에서 만든 것을 비롯하여 각종 불경(佛經), 경서(經書), 문집(文集) 등 다양한 주제의 문헌을 찍어내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보협인다라니경>

<재조대장경>

활자는 문자를 나무의 면(面)에 새기는 목판과 달리 나무, 금속, 바가지, 흙 등의 재료로 사각형 모양의 조각 안에 글자 하나하나를 만들고, 만든 활자를 판틀에 넣어 종이에 찍어서 책을 만든 인쇄방법으로, 금속활자와 목활자가 대표적이다.

목활자- 나무에 글자를 새겨서 만든 활자를 목활자라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건국 직후에 공신녹권(功臣錄券)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이후 훈련도감(訓練都監) 등에서 목활자를 만들어 책을 만들었으며, 특히 조선후기로 내려오면서 개인이나 문중에서 목활자를 만들어 족보나 문집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목활자는 대부분 활자를 판틀에 넣어 책을 찍는 용도로 썼으나 금속활자의 부자(父字)로 쓰이기도 하였다.

금속활자- 나무를 이용한 목판본이나 목활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철(鐵)이나 동(銅)과 같은 금속 재료를 녹여 활자로 주조(鑄造)하였으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창안한 것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 현전하고 있는 청주 흥덕사(興德寺)에서 찍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1377)』이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이어받아 조선시대 후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금속활자를 주조(鑄造)하여 사용되었다.

신연활자- 신식활자(新式活字), 신활자(新活字)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근대식 인쇄 방법이 도입된 것은 1883년(고종 20)으로, 이때 인쇄용 기계와 납 활자를 수입하고 박문국(博文局)을 설치한 것이 처음이었고, 활자의 모양이 일정하고 크기가 적당하여 주조가 정교하여 이후 널리 사용된 인쇄 방법이었다.

<목활자>
<직지>
<금속활자>

목판은 최초의 인쇄 수단이면서 근대까지 가장 널리 활용되었던 인쇄 방식이었다.
목판은 보존이 용이하고 계속적인 인쇄가 가능한데다 세밀한 그림이나 지도 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오래도록 성행하면서 기술과 전통이 계승되었던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중앙에서 배포된 서적을 번각, 간행하여 민간에 유포함으로써 교육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목판인쇄가 널리 활용되었다. 우리나라 목판인쇄의 꽃은 문집 목판이라 할 수 있다. 목판 판각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문집 목판은 유교 공동체에서 살던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문화의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지적 자산이다.
문집 목판의 판각 사업은 대단히 규모가 큰 사업이었다. 학연으로 결성된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스승의 문집을 판각하면서 자신의 학맥을 확인하고 학문의 도야에 더욱 매진하였다. 또 혈연으로 결성된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선조의 문집을 판각하면서 자기 뿌리를 확인하고 문중 공동체의 일원으로 한층 견고하게 결속을 다졌다. 나아가 학연과 혈연이 동시에 얽히는 가운데 하나의 지적 문화적 가족적 공동체의 결속이 더욱 강화되었다. 나무에 글자를 새겨서 만든 활자를 목활자라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건국 직후에 공신녹권(功臣錄券)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이후 훈련도감(訓練都監) 등에서 목활자를 만들어 책을 만들었으며, 특히 조선후기로 내려오면서 개인이나 문중에서 목활자를 만들어 족보나 문집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목활자는 대부분 활자를 판틀에 넣어 책을 찍는 용도로 썼으나 금속활자본의 부자(父字)로 쓰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