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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봉선생문집(壺峯先生文集)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호봉(壺峰) 이돈(李燉, 1568-1624)의 시문집을 새긴 책판이다. 소장 책판은 중복되는 4판을 포함하여 29판이 남아있는데, 완질을 산정하면 양면 판각 기준 18판이 결락되어 있다.
호봉선생문집(壺峯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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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이돈(李燉)(저), 이영(李泳)(편)
    판심제
    壺峯先生文集
  • 기탁처
    진성이씨 호봉공파종중
    서문
    신태관(申泰觀)(1897)
  • 발문
    판각시기
    1913년
  • 완본수
    43
    현존수
    29
  • 결락수
    18
인물정보
• 이돈[李燉, 선조 1년(1568) - 인조 2년(1624)]

◈퇴계 이황의 족자(族子)로서 정인홍을 논척하다 좌천당하다
호봉 이돈 선생의 본관은 진보(眞寶)이고, 초명은 향(享), 자는 광중(光仲), 호는 호봉(壺峰)이다. 아버지는 참봉 원회(元晦)로 퇴계 선생의 족자(族子)였다. 부인은 안동(安東)권씨(權氏)였으며, 자녀는 1남 3녀를 두었고, 증조부는 원종공신 이호(李壕)이다. 선생은 1568년 11월 14일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한 번 들으면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한다. 유년 시절 율원(栗園)의 이공(李珙)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중장년이 되어서는 한강 정구(鄭逑, 1543-1620) 선생과 친분이 두터웠다.
선조 34년(1601)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40세 되던 선조 40년 (1607)에는 성균관(成均館)전적(典籍)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형조(刑曹)정랑(正郞)과 사간원(司諫院)정언(正言)을 역임하였고, 광해군 1년(1609)에는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 사간원(司諫院)헌납(獻納)을 맡았다. 사간원 헌납으로 있을 때 정인홍(鄭仁弘)을 논척하다가 경상도 영해부사로 좌천되었다.

◈산수정(山水亭)과 이로당(怡老堂)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쓰다
광해군 2년(1610)에는 다시 예조(禮曺)정랑(正郞)이 되었고, 광해군 4년(1612)에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돌아가 형 혁(爀), 동생 환(煥)과 한방에서 동거하면서 화락(和樂)하게 지냈다. 고향 안동에 산수정(山水亭)과 이로당(怡老堂)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두 건물은 이돈 선생이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1612년경에 지은 것으로 전한다. 산수정은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처음에는 '통승려(統勝廬)'라고 하다가 얼마 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으며, 황폐화된 것을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이 새로 지었다. 이로당은 그가 말년에 후손들과 지역의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마을을 대표하는 강학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두 건물 모두 현재까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남아 있으며, 건물은 진성이씨 망천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다. 산수정은 경상북도의 민속문화재 제12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고, 이로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1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광해군 15년(1623) 인조반정 후 성균관(成均館)직강(直講)이 되었고,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영천군수에 재직하던 중 향년 57세로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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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정보
구성 :
본문의 수록 내용은 권1에는 시 167수가 수록되어 있고, 권2는 시 25수를 비롯하여 제문(祭文) 1편, 서(序) 1편과 부록으로 행장(行狀), 이만규(李晩煃)가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김양근이 지은 「산수정상량문(山水亭上樑文)」 및 만사(輓詞) 4편, 「산수정차운(山水亭次韻)」, 제현타주(諸賢唾珠)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작품들의 상당수는 그가 광해군 4년(1612)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안동군 망천동(輞川洞)에 산수정과 이로당을 지은 뒤, 학문과 사색에 전념하였던 당시에 찬술한 것들이다. 권2에 수록된 그의 대표작「산수정가(山水亭歌)」와 「유망천서(遊輞川序)」도 이 때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호봉선생문집』에 수록된 글은 대부분 시(詩)인데, 다른 문집들에 비해 저자의 학문적 업적을 보여주는 글은 별로 없다. 수록 시들 중 백가의체(百家衣體) 16수는 당송(唐宋) 제가들의 시구(詩句)를 가져와 작품화한 것이다. 그 밖에는 자연시(自然詩)와 창수시(唱酬詩)가 대부분을 차지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며 처사적 생활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필 수 있다.
간역 :
『호봉선생문집』은 권두에 새긴 서문에 따르면, 일찍이 손자 이영(李泳) 등이 원고를 수집하였지만, 당시에 간행되지 못하였다. 실제 판각이 진행되어 완료된 시점은 권말의 발문과 지문(識文)의 기록으로 미루어 1912년 2월에 시작되어 1913년 6월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두에는 문집의 간행 경위를 비교적 소상히 밝힌 신태관(申泰觀)의 서문이 있다. 서문의 작성 시점은 ‘숭정기원후오정유삼월상한후학통정대부(崇禎紀元後五丁酉三月上澣後學通政大夫)...동양신태관근찬(東陽申泰觀謹撰)’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서문을 받아 둔 시점은 고종 34년(1897) 3월이었으며, 당시부터 간행을 의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발문과 지문(識文)의 기록은 서문과 차이가 있다. 권말의 지문으로 본 작성 시점은 ‘소양중광지천중절족후손승훈랑전장릉참봉중식근지(昭陽重光之天中節族後孫承訓郞前章陵參奉[李]中稙謹識’라고 하여, 1913년 6월임을 알 수 있다. 서문과 발문의 시기가 다른데, 어떤 이유로 간행이 미뤄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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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정보
결락정보 :
책판은 2권 분량으로 서문과 본문의 여러 판 및 발문을 새긴 판 등 상당수가 분실되었다. 현존하는 인쇄본을 기준으로 전체를 양면 판각하였다고 가정하면, 완질의 판수는 43판이 된다. 현존하는 목판이 29판이고, 중복판이 4판 있으므로, 완질에서 18판이 결손되었다. 결락판은 서문을 새긴 제3/4장, 목록을 새긴 제5/6장, 제7/8장, 권1의 제1/2장, 제3/4장, 제9/10장, 제11/12장, 제15/16장, 제17/18장, 제19/20장, 제21/22장, 제23/24장, 제27/28장, 권2의 제1/2장, 제3/4장, 제5/6장, 제9/10장, 제11/12장이다.
형태적특징 :
『호봉선생문집』책판은 판목이 제작된 시점이 1913년, 즉 20세기 초반으로 다른 문집판들에 비하여 비교적 최근에 판각되었다. 그럼에도 중복판도 다소간 존재하고, 결락판이 18판에 이르는 등 온전하게 관리되지 못하였다.

목판에 새긴 본문의 체제는 사주쌍변(四周雙邊)의 광곽(匡郭) 안에 서문을 새긴 3판은 9행 10자의 초서체 대자(大字)로 판각하였다.
목록을 비롯한 본문은 해서체(楷書體)로 새겼으며, 기본틀은 10행에 20자를 일정하게 배치하였으며, 본문의 군데군데에 쌍행(雙行)의 주(註)를 판각하였다. 모든 판에 계선(界線)을 판각하였으며, ‘壺峰先生文集’이라는 판심제를 새겨두었다.
판심에는 권차(卷次)와 장차(張次)를 판각하였고, 판심의 어미(魚尾)는 서문을 새긴 판은 상하(上下) 내향(內向)의 일이엽화문(一二葉花紋) 어미가 혼재되어 있고, 본문은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로 일정하다. 판수(板首)의 제목은 ‘壺峰先生文集’으로 새겼다.

마구리를 제외한 판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0×50cm 내외로 비교적 고른 편이고, 반곽(半廓)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19×17cm로 거의 일정하다.
판목의 두께는 얇은 판은 2.2cm에서 두꺼운 판은 3.7cm에 달해 두께의 편차가 큰 편이다. 평균적인 판목의 두께는 3.0cm 내외로 비교적 두껍게 제작되었다. 책판의 무게는, 적게는 1.0kg에서 많게는 1.7kg이 넘는다. 평균적인 목판의 무게는 1.5kg 정도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판목의 무게 차이는 판목을 재단할 때 연판자(鍊板者)가 재단을 달리하였거나, 보관 환경에 따른 판목의 건조 상태, 또는 습기에 노출된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판목의 보존 상태는 전반적으로는 양호하지만, 일부 판에서는 판의 균열과 마구리의 파손 및 이탈 등이 부분적으로 진행되었다. 일부에서는 마구리를 후대에 새로 제작하여 끼워 넣기도 하였다.
판의 균열이 발생한 판은 권1의 목록을 새긴 제1/2장, 권1의 제3/4장, 권2의 제31/32장, 권2의 제33/34장 등이 있다. 그 외에 판면에 부식이 진행되거나 충해는 없다. 이는 판각 후 인쇄가 잦아지면서 인쇄에 따른 자연 마모 현상은 진행되더라도, 목판에는 먹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판의 부식이 방지되고 더불어 방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권1의 목록을 새긴 제11/12장은 우측 제4-6행의 상단부에 둥그런 균열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판목의 제작 시부터 있었던 나무의 옹이 부분이, 건조되면서 자연스럽게 수축되어 발생한 것이다.
마구리의 균열이 발생한 판은 권1의 서문을 새긴 제1/2장을 비롯하여 권2의 묘갈명(墓碣銘)을 새긴 제19/20장 등이 있고, 본문을 새긴 판에서 충해나 누습으로 인한 판의 부식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그 밖에 권1의 제7/8장 우측 마구리는 보관상의 소홀함 탓인지 절반가량이 파손되었지만, 후대에 보수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었다. 또한 권2의 제19/20장 좌측 마구리는 세로로 절반가량이 갈라져 완전히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다.
마구리의 형태와 묵서 기록에 대하여 살펴보면, 책판 제작 시 마구리와 본문을 새긴 판의 결합 형태는 쇠못을 마구리와 결합되는 가운데 부분에 두 개를 박아 고정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판면이 마구리의 좌우측에 고정되는 부분은 마구리의 끝까지 관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마구리의 홈 크기와 본문판이 결합되는 부분이 맞지 않아 흔들림이 발생할 경우, 마구리와 판면을 결합한 뒤 목심을 마구리의 좌우측 바깥 부분에서 끼우는 방식으로 보강하여 흔들림을 방지하였다.
마구리의 형태는 단면이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 형태로 크기도 비교적 균정한 편이며, 본문보다 3-5cm 가량 크게 제작되어 본문을 새긴 판을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다.
본문을 새긴 판면과 마구리의 결합 시, 결합 부분은 마름모 형태로 줄여서 고정 작업의 효율성을 도모하였다. 판면의 좌우에는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된 반면, 판면의 상하에는 광곽의 크기와 거의 동일할 정도로 여백을 두지 않았다. 이러한 재단 방식은 다른 문집판에서도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으로, 목재를 절약하고, 인출 시 먹의 낭비를 줄이고자 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일부 판에서는 판면을 기준으로 마구리의 앞면과 뒷면에는 문집명과 장차 및 판을 새긴 사람의 이름을 묵서하여 두었다. 뿐만 아니라 마구리의 좌우면에도 문집명과 책판의 해당하는 장차를 묵서해 두기도 하였다. 또한 일부 판에서는 묵서 기록이 전혀 쓰여 있지 않다. 묵서 기록은 ‘ 호봉집(壺峯集) 목록(目錄) 일이장(一二丈)’ 등과 같다. 묵서 기록 중에서 판의 보관 과정 중 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먹이 지워져 판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본문을 새긴 판면의 글자 마모 정도와 묻은 먹의 흔적으로 볼 때, 인출 회수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판각한 시점에 비하여 글자의 마모가 다소 발생하였고, 마구리와 판면의 결합 공간까지 먹이 충분히 스며든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전존하는 목판 중 단면으로 판각된 것은 서문의 제10장을 새긴 1판에 불과하다.
책판은 거제수나무와 고로쇠나무, 산벚나무 등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특이사항 :
문집판의 제작 시 본문을 새길 때 대두법의 표현은 크게 조립식과 일체형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호봉선생문집』은 일체형 방식을 취하였다. 본문의 새기는 내용 중 대두가 필요한 판의 경우 연판자가 나무를 재단할 때부터 특정 행을 한 두 칸 올려 재단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목판 제작 시 판각의 저본이 되는 판하본(板下本) 또는 판서본(板書本)을 작성한 서사자와, 각수 또는 연판자가 사전 조율하여 재단하여야 한다. 작업 진행 방식이 동일한 크기의 판목을 재단하고, 동일한 광곽을 사용하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호봉선생문집』판은 목판 제작 시에 옹이가 포함된 부분은 제외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집의 전존 목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판면과 마구리의 갈라짐 현상이 옹이에서 비롯된 사례가 다수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외 특이한 점은, 선생의 아들인 석병(石屛) 이회보(李回寶)의 문집인 ‘석병선생문집’과 단판끼리 묶어 양면판의 형태로 보관된 판이 있다는 점이다. 같은 종중에서 보관 중인 문집들 간에 가끔 있는 경우로, 권1의 마지막인 29장 뒷면에 석병선생문집 권2의 39장이 새겨져 있다.
책판정보
구분 내용 수량
(1,2)(5,6) <(外板(hb_b)-(,9)>(10,空) 3
目錄 (1,2)(3,4)(9,10)(11,12) 4
卷1 (5,6)(7,8)(13,14)(25,26)(29,) 5
卷2 (7,8)(13,14)(15,16)(16,33)(17,18)(19,20)(19,20)(21,22)(23,24)(25,26)(25,26)(27,28)(27,28)(29,30)(29,30)(31,32)(33,34) 17
서지/해제 작성자 : 작성:임기영
윤문: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