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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봉선생문집(玉峯先生文集)

조선 전기의 문신인 옥봉(玉峯) 권위(權暐, 1552∼1630)의 시문집을 새긴 책판이다. 책판은 본문, 서문(序文)과 발문(跋文) 등을 새긴 4권 2책 분량으로 전체 72판 중 71판이 남아 있다.
옥봉선생문집(玉峯先生文集)

1  /  71

  • 저자
    권위(權暐)(저), 권정하(權靖夏)(편)
    판심제
    玉峯先生文集
  • 기탁처
    도계서원
    서문
    김굉(金㙆)
  • 발문
    류치명(柳致明)
    판각시기
    1847년
  • 완본수
    72
    현존수
    71
  • 결락수
    1
인물정보

• 권위[權暐, 명종 7년(1552)-인조 8년(1630)]

조선 중기 선조와 광해군 연간에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회(叔晦), 호는 옥봉(玉峯)이다. 생원 권사빈(權士彬)의 증손이며, 조부는 의흥현감(義興縣監)을 지낸 권의(權檥)이다. 아버지는 생원 권심행(權審行, 1517~1565)이며, 어머니는 절충장군(折衝將軍) 강희철(康希哲)의 딸이다.

◈부친의 정치적 변고를 보며 과거를 피하다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서 태어났다. 월천(月川) 조목(趙穆),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에게 수학하였는데, 모두 퇴계 이황의 문인들이었다. 문사(文事)가 뛰어나 21세의 나이에 동당별시(東堂別試)에서 삼장(三場)에 모두 합격하였다. 그러나 그는 출중한 재주에도 50세의 늦은 나이에 비로소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가 과거에 욕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부친 때문이다. 성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아버지 권심행이 정치적 이유로 억울한 변고를 당해 객지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위해 과거에 응시하기로 결심하고 선조 34년(1601) 50세의 나이에 마침내 문과에 급제하였다.

◈짧은 관직 생활, 후학을 기른 만대헌
이후 부정자를 거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내다가 공조좌랑(工曹佐郞), 해미현감(海美縣監), 형조좌랑(刑曹佐郞), 호조좌랑(戶曹佐郞),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지냈다. 광해군 1년(1609)에는 수성찰방(輸城察訪)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였다.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서재를 짓고 학문 활동을 하며 지내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동도교수(東都敎授)에 부임하여, 그곳에서 후진 양성을 위해 힘썼다. 이후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제수되었으나 더 이상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선조 20년(1587), 선생은 학문을 익히고 후학을 기르기 위해 ‘만대헌(晩對軒)’을 지었다. 건물은 옛 선비의 정취가 느껴지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7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다. 사후 도계서원(道溪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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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정보
구성 :
문집의 편성을 살펴보면, 책의 맨 앞부분에는 문소(聞韶) 김굉(金㙆)이 지은 서문(序文)과 문집의 전체 목록이 있다.
본문은 전체 4권 2책으로 제1책의 권1에는 시(詩), 소(疏), 권2에는 서(書), 잡저(雜著), 축문(祝文), 제2책의 권3에는 제문(祭文), 행장(行狀), 비명(碑碣), 묘지(墓誌), 권4에는 부록으로 만사(輓詞) 14수, 증유(贈遺) 15수, 묘갈명(墓碣銘) 2편, 묘지명(墓誌銘), 행장(行狀), 행록(行錄) 각 1편, 봉안문(奉安文) 3편, 축문(祝文), 고유문(告由文), 상량문(上樑文)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수록된 발문(跋文)은 류치명(柳致明)이 지은 글이다.

◈경복궁 중심의 내성 축조를 주장한 상소를 올리다
시 가운데 「동도작(東都作)」이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들이 있는데, 65세 되던 광해군 8년(1616) 동도교수로 발령받아 동도(현재의 경주)와 그 인근 지역인 영천, 감포, 부산 등의 지역을 유람하며 쓴 여행시들이다.
소(疏) 중에는 「의청축내성소(擬請築內城疏)」가 있는데,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불안전한 도성(都城)의 안전을 걱정하며 경복궁을 중심으로 내성을 새로 축조해야 한다는 것을 청원한 내용이다. 전쟁을 미리 막기 위해 서쪽으로는 사복천(司僕川), 남쪽으로는 광통교(廣通橋)를 연결하는 내성을 쌓아 궁(宮)을 보호하고 외침을 대비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간역 :
『옥봉선생문집』은 후손 권정하(權靖夏) 등이 일차적으로 유고를 수집, 편찬하여 헌종 12년(1847)에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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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정보
결락정보 :
책판은 4권 분량의 본문을 새긴 전체 72판중에 권4의 제9/10장을 제외한 71판이 남아 있다.
형태적특징 :
책판의 보존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며, 사주쌍변(四周雙邊)의 광곽(匡郭) 안에 본문은 해서(楷書)로 새겼고 서문과 발문은 초서(草書)로 새겼다.

본문의 판각 체제는 10행(行) 18자(字)를 기본으로 하고, 전체 본문에 걸쳐 계선(界線)을 판각하였으며, 아래위 백구(白口)에 판심의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로 균일하다.

판수(板首)의 제목은 ‘玉峯先生文集’이고, 판심의 제목도 동일하다. 마구리를 제외한 판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1.0×54.0cm 내외로 비교적 고른 편이고, 반곽(半郭)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0.0×17.0cm로 거의 일정하다.
판목의 두께 또한 2-3cm 내외로 비교적 일정하다. 책판의 무게는 2.0kg 내외이며, 가벼운 판은 1.5kg에서 무거운 판은 2.5kg이 넘어서 제법 차이가 나는 것도 있다.
책판의 좌우에는 모두 마구리가 부착되어 있고 전반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다만, 판에 따라서 일부 판목의 뒤틀림 현상이 발생하였다. 서문의 제1/2장과 제3장을 새긴 판은 좌측 마구리의 뒤틀림 현상이 있고, 판면에 균열 현상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두 판 모두 본문을 새긴 부분은 훼손되지 않았으며 내용 또한 판독 가능한 상태이다.

책판 제작 시 마구리와 본문을 새긴 판의 결합 형태는 나무못, 즉 목심을 가운데에 한 개 또는 두 개를 관통시켜 고정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판면이 마구리에 고정되는 부분은 마구리의 좌우측 끝까지 관통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마구리의 홈 크기와 본문판이 결합되는 부분이 맞지 않아 흔들림이 발생할 경우, 마구리와 판면을 결합한 뒤 목심을 마구리의 좌우측 바깥 부분에서 끼우는 방식으로 보강하여 흔들림을 방지하였다.

마구리의 형태는 단면이 정사각형으로 크기도 비교적 균정한 편이며, 본문보다 5cm 내외로 크게 제작되어 본문을 새긴 판을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마구리의 바깥쪽에는 문집명과 책판이 해당하는 권차(卷次)와 장차(張次) 및 판을 새긴 각수(刻手)의 이름을 묵서(墨書)해 두었는데, 붓으로 쓴 묵서 기록의 일부는 지워지거나 오래 되어 모든 내용이 온전히 파악되지는 않는 부분도 있다. 판독이 불가능한 3판을 제외한 모든 판에 각수의 기록이 나타나 판각 작업의 인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묵서로 확인할 수 있는 판각작업에 참여한 각수는 권용(權龍), 김국원(金國元), 김득(金得), 김범상(金範尙), 김성진(金成振), 김수업(金守業), 김유명(金有明), 오야룡(吳野龍), 유대근(劉大根), 유응수(劉應守), 유치우(劉致雨), 이형신(李炯臣), 장일재(張日才), 전기덕(田基德), 전만세(田萬世), 전성대(田成大), 정영준(鄭英俊), 정충원(鄭忠元), 진득용(秦得龍), 최경인(崔敬仁) 등 20여명 정도이며 판독 가능한 목판의 기록을 통해 이들의 판각 분량은 한 명당 평균 3~4판 정도를 판각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근, 오야룡의 경우처럼 많게는 5판 정도를 판각한 경우도 있으며, 적게는 김유명, 정영준 등은 1판, 장일재는 2판 정도를 판각하기도 하였다. 책판은 고로쇠나무로 제작되었다.
특이사항 :
전존판(傳存板) 중 단면만 판각하고 한 면은 공판(空板)인 것이 비교적 많이 보이는데 서(序)의 제3장, 목록의 제1장, 제2장, 제3장, 제5장, 제6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권2의 제7장, 제8장, 제21장, 권3의 제30장, 제37장, 권4의 제14장, 제25장, 제26장이 그러한 예이다. 이는 짧은 기간에 여러 명의 판수가 작업하면서 생긴 현상이라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마구리에 묵서로 표기된 각수의 성명 표기에서 동일한 각수의 이름이 다양하게 표기된 점이 특이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권룡(權龍)은 ‘권룡이(權龍伊)’, 김국원(金國元)은 ‘국원(國元)’, 김득(金得)은 김득이‘(金得伊)’, ‘김득형(金得兄)’, 김성진(金成振)은 ‘金聲桭’, 류치우(劉致雨)는 ‘치우(致羽)’ 등이 있다.
책판정보
구분 내용 수량
(1,2)(3,空) 2
目錄 (1,空)(2,空)(3,空)(4,7)(5,空)(6,空)(8,空)(9,空)(10,空)(11,空) 10
卷1 (1,2)(3,4)(5,6)(7,8)(9,10)(11,13)(12,14)(15,16)(17,18)(19,20)(21,22)(23,空) 12
卷2 (1,2)(3,4)(5,6)(7,空)(8,空)(9,10)(11,12)(13,14)(15,16)(17,18)(19,20)(21,空) 12
卷3 (1,2)(3,4)(5,6)(7,8)(9,10)(11,12)(13,14)(15,16)(17,18)(19,20)(21,22)(23,24)(25,26)(27,28)(29,跋-3)(30,空)(31,32)(33,34)(35,36)(37,空) 20
卷4 (1,2)(3,4)(5,6)(7,8)(11,12)(13,空)(14,空)(15,16)(17,18)(19,20)(21,22)(23,24)(25,空)(26,空) 14
(1,2) 1
서지/해제 작성자 : 작성:임기영
윤문: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