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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정보
조선 초기의 무신인 등암(藤巖) 권징(權徵, 1426~1467)의 시문집을 새긴 책판이다. 책판은 본문, 서문(序文)과 본문(本文) 등을 새긴 2권 1책 분량으로 21판이 남아 있다.
등암선생일고(藤巖先生逸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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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암선생일고(藤巖先生逸稿)
저자 권징(權徵)(저), 권인호(權仁濩)(편)
판심제 藤巖先生逸稿
기탁처 안동권씨 부정공파종택
서문 이주정(李周禎)(1814), 이인행(李仁行)(1826)
발문 안관직(安光直)(1828) 윤노동(尹魯東)(1828)
판각시기 1828년 이후
완본수 22
현존수 21
결락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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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 권징[權徵, 세종 8년(1426)- 세조 13년(1467)]

권징은 조선 초기 세조(世祖) 연간에 활동한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등암(藤巖)이다. 아버지는 수의부위(修義副衛) 권가후(權可後)이다.

◈이시애의 난 때 함길도 병마평사로 종군 중 자결하다
세종 29년(1447)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세종 32년(1450)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역임하였다. 세조(世祖) 때 형조좌랑(刑曹佐郞), 공조좌랑(工曹佐郞)을 거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세조 13년(1467)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평할 때 함길도절도사(咸吉道節度使) 허종(許琮)의 막하에서 함길도 병마평사(兵馬評事)를 맡아 싸우다가 형세가 매우 위급해지자 반란군을 꾸짖고 자결하였다. 병마평사는 조선 시대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인 정6품 외직 무관직이다. 그는 죽음에 이르렀을 때 적삼을 잘라 혈지(血指, 손가락을 상처 내어 나온 피)로 “남아의 일과 장부의 명(命)은 예부터 이와 같다”는 편지를 가족에게 썼다. 사후에 집의(執義)로 추증되었다.
자세히 보기
문집정보
구성 :
이인행이 지은 서문에 의하면 “저자는 이시애의 난 때 당시 함길도 절도사였던 허종의 막하에서 종군(從軍)하다가 전사(戰死)하였으며, 약관의 나이 때 이기론(理氣論)을 논한 것이 있는데 주자와 퇴계의 이론과 동일하였다. 또한 공의 후손이 영남에 거주하면서 번성하여 이름난 후손들이 무수히 나왔으며, 후손 권인호의 부탁으로 서문을 쓴다” 라고 하였다.

문집의 편성을 살펴보면, 책의 맨 앞부분에는 1814년 이주정과 1826년 이인행이 쓴 서문이 있고, 권말(卷末)에는 안관직과 윤노동 등이 문집을 편찬하게 된 전말을 기록한 발문이 있다.
본문은 전체 2권으로 제1책의 권1에는 시(詩), 서(書), 설(說), 책(策), 서(序), 권2는 부록으로 행장(行狀), 세계서(世系敍),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봉안고사(奉安告辭), 봉안축문(奉安祝文), 찬사절시(贊死節詩),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향사당(鄕射堂)을 읊은 시 1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서(書)에는 혈지기가서(血指寄家書)라 하여 전장(戰場)에서 가족에게 혈서로 쓴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설(說)에는 이기설(理氣說), 책(策)은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문과 초시(初試)인 관시(館試)와 전시(殿試), 서(書)에는 총마계서(驄馬契序), 총마계록(驄馬契錄) 등이 수록되었다.

행장(行狀)은 류이좌(柳台佐), 세계서(世系敍)는 5대손 권우(權宇), 묘표는 권상일(權相一), 묘갈명(墓碣銘)은 정범조(丁範祖), 봉안고사(奉安告辭)는 배인검(裵行儉), 봉안축문(奉安祝文)은 이광정(李光庭), 찬사절시(贊死節詩)는 김명석(金明錫)이 찬하였으며 발문은(跋文)은 윤노동, 안광직이 지었다.
간역 :
『등암선생일고(藤巖先生逸稿)』는 집에 내려오던 저자의 유고(遺稿)와 여러 글을 수집하여 후손 권인호(權仁濩)에 의해 간행되었다. 순조 14년(1814) 이주정(李周禎)이 서문을 쓰고, 순조 26년(1826) 이인행(李仁行)이 다시 서문을 쓰고, 1828년 안관직(安光直)과 윤노동(尹魯東)이 발문을 썼다.
목판정보
결락정보 :
책판은 각 권의 맨 앞에 수록된 서문 6판, 목록 1판 등 7판을 비롯하여 권1에서 권2까지의 본문 2권 분량의 본문을 새긴 15판 중 권1의 제15-16장이 결락된 21판이 남아 있다.
형태적특징 :
책판의 보존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며, 사주쌍변(四周雙邊)의 광곽(匡郭) 안에 행초(行草)의 서문과 해서(楷書)의 문집의 목록과 본문 등을 새긴 21판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서문의 판각은 6행(行) 12자(字)이며, 본문의 판각 양식은 10행 20자로 계선(界線)을 판각하고, 아래위 백구(白口)에 판심의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로 균일하다.
판수(板首)의 제목은 ‘藤巖先生逸稿’이며 판심의 제목도 동일하다.

마구리를 제외한 판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0.5×52.0cm 내외로 비교적 일정한 편이고, 반곽(半郭)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0.0×16.0cm로 거의 일정하다. 판목의 두께 또한 2.5~3.0cm 내외로 비교적 일정하다. 책판의 무게는 거의 2.5kg 내외이며, 적은 판은 1.8kg으로 차이가 나는 것도 있다.
책판의 좌우에는 모두 마구리가 부착되어 있다.
책판 제작 시 마구리와 본문을 새긴 판의 결합 형태는 나무못을 가운데에 한 개 또는 두 개를 관통시켜 고정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판면이 마구리에 고정되는 부분은 마구리의 좌우측 끝까지 관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마구리의 형태는 단면이 정사각형으로 크기도 비교적 균정한 편이며, 본문보다 5cm 내외로 크게 제작되어 본문을 새긴 판을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마구리의 바깥쪽에는 대체로 묵서(墨書)가 남아있다. 문집명, 책판이 해당하는 권차(卷次), 장차(張次) 및 판을 새긴 각수(刻手)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판각 작업의 인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묵서 기록 중 일부는 지워지거나 오래 되어 모든 내용이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일부 판들은 약간의 훼손 흔적이 역력하고, 일부는 훼손되어 판독되지 않는 것도 있다.

확인 가능한 묵서기록을 살펴보면 각수로 참여한 인원은 강응백(姜應伯), 강응복(姜應福), 계성(季成), 권지도(權之道), 박상춘(朴常春), 세윤(世允), 전응존(田應存), 진득손(陳得孫), 허손(許孫) 등 10여명 이상으로 파악되며, 가장 많이 판각한 각수는 권지도로 전체 3판을 판각하였다. 기타 각수는 1판에서 2판 정도를 판각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판독 가능한 각수명으로 볼 때 등암선생일고(藤巖先生逸稿)』의 책판을 판각한 대부분의 각수는 같은 문중에서 제작한 『호양선생문집(湖陽先生文集)』의 판각에도 참여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책판을 제작한 나무는 고로쇠나무와 박달나무를 이용하였다.
특이사항 :
권2의 제11장에서 제14장까지의 2판은 판각 순서가 특이하다. 즉, 제11-12장, 제13-14장과 같이 한 판에 연속된 장을 판각하지 않고, 제11-14장, 제12-13장을 각각 한 판으로 판각하였다.
이주정과 이인행이 쓴 서문 제5장의 뒷면은 각각 공판(空板)으로 남겨두었고, 이인행이 쓴 서문의 제5장 중 3행의 임금을 나타내는 ‘상지(上之)’ 라는 글자는 한 행을 올린 대두법(擡頭法)을 사용하여 경의를 표한 점이 특이하다.
책판현황
구분 내용 수량
(1,2)(3,4)(5,空)(1,2)(3,4)(5,空) 6
目錄 (1,2) 1
卷1 (1,2)(3,4)(5,6)(7,8)(9,10)(11,12)(13,14) 7
卷2 (1,2)(3,4)(5,6)(7,8)(9,10)(11,14)(12,13) 7
서지/해제 작성자 : 작성:임기영
윤문: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