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는 문중에서 선조들의 문집을 매우 많이 발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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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정조 20)에 편찬된 ‘누판고’(鏤板考)에 의하면 관아・서원・사찰・민가에 보관되어 있는 목판 772판 중 문집이 314판이나 된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되어 있는 목판 55,075판 중에서도 문집이 44,559판으로 78%를 차지한다. 왜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많은 문집 목판을 제작하였을까? 조선시대 가장 많은 수의 목판이 제작된 지역은 경상도였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학맥의 계승과 문중 문화를 창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목판을 대량 제작하였다. 특히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집 목판 제작이 성행하였는데, 이는 경상도 지역의 유교 지성사회를 추동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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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출신 대유학자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을 사사한 경상도 지역의 유학자들은 서로 사제지간 내지 동문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문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 바탕 위에서 퇴계학파(退溪學派)가 형성되었고 한국 지성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오래된 유교문화를 형성하였다. 안동의 씨족 공동체 문화 역시 문집 목판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상북도는 지리적 여건상 평야가 적고 산지가 많은 지역이어서, 그 지역 주민들은 주로 소규모의 거주지를 형성하면서 동성(同姓) 마을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형성된 경상도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가족가치와 종법 질서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더욱 발달하게 되었고, 이는 영남 지역 학문 공동체를 결집시키고 지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에 더욱 기여하였다. 결국 안동 지역에서는 지연 혈연 학연이 하나로 엉키는 독특한 유교 공동체가 결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교 공동체의 결성을 바탕으로 선조들의 문집 발간이 이루어졌다. 문집 발간은 문중과 서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인력이 투입되는 거대한 사업이었다. 문집 발간의 여론을 수렴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학문 공동체와 지적 네트워크는 더욱 강하게 결성되었고, 재정을 조달하고 판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혈연 공동체가 다시금 결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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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는 조선시대 전국에서 유교문화가 가장 번성했고 현재도 가장 많은 유교문화재가 남아있는 지역이다. 경상도지역의 유교목판은 국가가 아닌 민간 사족(士族)이 주도한 민간 유교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