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의 목판 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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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로 인정받기도 한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소형의 두루마리 책이지만 긴 경문을 작은 목판에 모두 새긴 우수한 인쇄물로 호평받았다. 또한 판각술도 매우 정교하여 글자체에도 필력이 넘친다. 인쇄 방식은 글자 면을 위로 놓고 먹물을 칠한 다음, 그 위에 종이를 놓고 부드러운 헝겊 뭉치로 문질러서 찍어낸 것이다. 통일신라 말엽에는 목판 인쇄술이 더욱 발전하여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문(詩文)을 모아 인쇄물로 편찬해내기도 했다. |
|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우대하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종교와 학술활동이 활발하였고 문인들의 저술 활동도 대단히 풍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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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려시대에는 관청과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적들을 목판으로 인쇄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관판본은 사찰판보다 인쇄품질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관청의 출판에는 종교적 정성이 결여되어 있는데다, 중앙 관서에서는 교감이나 편집만 하고 판각 자체는 주로 지방관서에서 담당했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간행한 불경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007년 총지사에서 찍어낸 ‘보협인다라니경’이다. 1022년 거란족의 침입에 맞서 송악 내흥왕사에서 1087년까지 대장경판을 새겼는데 이 경판이 ‘초조대장경’이다. |
그 후 대각국사 의천이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다시 ‘속장경’을 새겼고,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6년부터 16년 동안 다시 ‘재조대장경’을 새겼다. 이것이 현재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인데, 그 많은 경판에 오자가 하나도 없고 글씨와 새김은 마치 명필명공(名筆名工) 한 사람이 해낸 것 같다. 이것으로부터 고려시대 목판 기술의 수준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 조선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은 목판 인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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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목판 인쇄를 주도하던 사찰 목판은 점차 쇠퇴하였고 대신 관판본(官板本)이 주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 관판본의 특징은 금속활자본과 목판본이 병행되었다는 점이다. 태종(太宗) 때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수많은 금속활자를 제작하면서 금속활자본은 조선시대 관판본을 대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금속활자본은 인쇄 부수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적인 출판 사업에는 목판인쇄를 병행해야 했다. 목판본은 주로 중앙 정부에서 간행한 활자본을 지방관서에서 번각하거나 중간할 때 사용되었다. 목판본의 인쇄 품질은 규장각이나 장서각과 같은 중앙 정부기관에서 간행한 것이 뛰어났고, 자본과 기술면에서 불리한 지방 관서의 판본은 인쇄품질도 비교적 낙후된 편이었다. |
그 후 대각국사 의천이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다시 ‘속장경’을 새겼고,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6년부터 16년 동안 다시 ‘재조대장경’을 새겼다. 이것이 현재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인데, 그 많은 경판에 오자가 하나도 없고 글씨와 새김은 마치 명필명공(名筆名工) 한 사람이 해낸 것 같다. 이것으로부터 고려시대 목판 기술의 수준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