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판 판각 사업에는 엄청난 시간과 인력 그리고 재정이 투입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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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로 ‘퇴계선생문집’의 ‘중간일기’(重刊日記)를 살펴보면, 사업 기간 중 연인원 2,000명에 가까운 인력이 투입되었고, 간행작업이 본격화 되던 1843년 3월 1일 이후 윤7월 16일까지는 간행 장소인 안동 봉정사에 평균 25인 정도의 간임(刊任)이 묵었고 66명의 각수(刻手)가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퇴계선생문집’ 교정본은 목판 2,500 판과 32 책 11질의 책이 인쇄되었는데, 그 판각비와 인쇄 비용은 얼마나 되었을까? ‘중간일기’에 의하면, 판각비로 462냥 7전 5푼이 들었고 인쇄비로 3,680냥 7전 8푼이 들었다고 되어 있다. 19세기 초반의 경우 1냥은 쌀 6말에 해당하므로 그 금액을 쌀로 환산하면 22,085말이 된다. 다시 그것을 현재의 시가(1말 당 20,000원)로 환산하면 4억 4천 1백 6십 9만 4천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게다가 조선 시대 국가의 주 세입원이 농산물이란 점과 농사의 여건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다는 시대 상황을 감안해볼 때 쌀이 가치는 현재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고, 그런 만큼 그 문집 발간 비용도 훨씬 높았을 것이다. 또 하나의 예로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제자인 대계(大溪) 이주정(李周禎:1750-1818)의 문집(’大溪集’)을 판각할 경우, 목판 140장을 만드는 데 2년 반의 시간과 3,000냥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 남자노비 한 명의 몸값이 10냥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는 남자노비 300명을 들일 수 있는 거액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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